인도의 북부를 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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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simp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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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15시간을 달려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영국의 대포와 총에 칼과 활로 믿을수 없는 6개월을
저항했던 곳 흙을 먹어가며 끝까지 저항했던 바로 그 곳
그 곳을 점령했던 장군도 끝내 자신의 패배를 보고했던
곳 그 네팔계의 몽골리안 (정확한 이름을 잘 모르겟다)
들이 살았던곳
지금은 중국의 탄압을 피해 티벳의 임시정부가 있는곳
그리고 달라이라마가 있는고 다람살라에서 며칠을 보냈다
애석하게도 달라이라마는 볼 수가 없었다.
나무위에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던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던
그리고 화창한 날씨와 비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던 그 곳
에서의 며칠을 보낸뒤 암릿차르로 향했다.
암릿차르는 다람살라보다는 조금 아래에 위치한 곳이다.
시크교의 성지인 GOLDEN TEMPLE 황금사원이 있는곳으로
밤 10시쯤이 되어서야 골든템플에 도착했다.
경탄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운 사원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라 불릴만한 그런 황금빛 모습으로
물위에 솟아 올라 있는 사원과 그 곳을 찾는 경건한
모습의 시크교인들 인도인들의 종교에 대한 헌신적 생활을
볼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시크교는 나나크라는 1대 스승 즉 힌두교인으로 자랐으나
힌두교의 계급 카스트제도에 회의를 느끼고 이슬람교의
철저한 종교적생활에 영향을 받아 힌두교위에 이슬람교를
융합 함으로써 만민평등의 교리로 시크교를 창시 했다.
인도인들은 생활이 종교라 할만하다. 종교가 아닌 생활...
가령 휴가를 얻어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온가족이
며칠을 걸려 이곳에 오고는 단 몇시간 성지순례를하고
다시 집으로 며칠을 내려가는일이 허다 하다고 할 정도다.
현재 인도는 힌두교가 85% 이슬람교 10% 나머지 기독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가 5%를 차지한다고 한다.
다음날 골든템플을 한번더 찾아보고는 잠무를 경유
스리나가르로 향했다.
카시미르 지역인 스리나가르 현재 카시미르 지역은
파키스탄과 분쟁지역이다. 무슬림( 이슬람 교도)들이 주축이되어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을 했다. 그런 이유로 종교적인 문제와
국경의 문제가 동시에 분쟁의 빌미가 되고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비장감에서인지 지역 곳곳마다 군인들이 깔려있다.
또한 지나는 지역마다 여권을 보여주며 검사를 받아야했다.
그것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번을...
그런 긴장감과는 다르게 스리나가르의 도착한 야경이란...
인도의 높은신분 왕족이나 브라만정도 겠지만 그들이 여름
휴양지로 택했을 만한 풍경이었다.
넓은 호수위에 뿌려져 있는 불빛들 그 불빛들은 바로
하우스 보트였다. 하우스 보트 내부는 영국의 거실과 침실
그리고 식당을 옮겨논 듯한 고급스러움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듯 조금 낡아 있기는 했지만 과거가
어떠 했으리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했다.
시카라라는 작은 조각배같은 것에 작은 침대처럼 만들어 놓고
양쪽에 커튼을 달아 놓았다. 그 위에 누워 호수위를
떠다니는 기분 옛날 귀족들의 뱃놀이란게 이런 것이었을까
다음날 파할감으로 말트래킹을 떠났다.
말을 타고 오른 산과 그 위에 펼쳐진 초원
그리고 그 초원위를 말을타고 달리는 기분이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다시 레(LEH)를 향해 출발 했다.
3500미터 고지위에 왕궁을 건설했던 그리고
그 척박한 히말라야 자락에 넓은 영토를 짐작케 할만한
유적들 사원들...
그들은 또다른 몽골리안들 이었다.
레를 가기위해 배낭을 지고 걸었던 오르막 산길 그리고
히치하이킹 견인차를 얻어타고 얼마간을 간후 방향이
달라 다시 내려 걸었던 기억들 고생스러웠지만
3500미터 고지위의 고산족의 고대도시를 보기위한
하나의 즐거움이 될 뿐이었다. 물론 산길에서 간신히 버스를
잡아 70킬로미터내에 아무런 마을도 없다는 막막함에서
간신히 벗어 날수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탄 버스도 인도인들과 뒤엉켜 거의 구겨지다 시피
열몇시간을 타고 가야만 했다.
도중에 길이 막혔다고 3시간동안 그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있기도 하며 인도인들은 신기하리만치 아무런 불평없이
그 시간을 즐기기도 하며 기다리기도 하며 받아들였다.
그렇게 도착한 레에서는 또다른 부족 LADAKH 라다키족을
만났다 그들의 얼굴은 몽골리안이 많이 혼혈이 된듯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산지대의 농경과 유목을 병행한 것 처럼 보였으며 외부와는
오랜 시간 단절된 삶을 살았던 지금도 겨울이면 외부와는
교통이 두절된다. 3500미터가 넘는 이곳으로 눈이 내리면
차가올 방법이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인더스강의 상류줄기가 있다.
거기서의 래프팅 또한 있을 수 없다.
물살이 거친 것은 아니었지만 히말라야산맥에 둘러쌓인
인더스강 줄기위에서의 래프팅이란 경험은 나에게 아주
거친 물결이상의 즐거움을 주었다.
떠나기 전날 100루피를 주고 본 라다키족의 민속무용은
과거 우리나라의 농사짓던 시골의 춤들과 비슷한템포로
느리고 어우러짐이 두드러졌고 악기또한 북과 태평소
비슷한 소리를 내는것이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편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춤이었다 확실히 북쪽은
인도와는 많이 다르다.
고산병을 염려 했었지만 단 하루 그것도 밤에 자는 도중
숨을 헐떡거리며 산소부족에 눈을 떴을 뿐이었다.
그렇게 레를 떠나 마날리로 향했다.
레에서 마날리로 가는길에는 5300미터가 넘는 고지대를
넘어야한다. 그곳을 지나는 동안 잠깐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이미 고지대에 적응한듯 별 느낌은 없었다.
마날리 역시 유명한 휴양지다. 계곡과 산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어서 여름엔 특히 관광객들이 많고 여기서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들도 많다.
폭포를 찾아 가려했으나 길을 잘못들어 찾아가게 된 이름 모를
산등성은 기대안한 만족감을 주었고 마치 그림에서 보았던
알프스의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한국인 ( 아가씨? 소녀? 모르겠다)
계곡 근처 들렀던 까페에서 먹었던 망고 쉐이크, 파파야 쉐이크
그리고 주인이 따주던 사과 그리 맛있는 사과는 아니었어도
맛있을 수 밖에 없던 그런 사과 였다.
음식을 잘하던 마운틴뷰라는 식당 그렇게 하루를 묵고는
다시 15시간 버스를 달려 뉴델리에 와있다.
이제 네팔을 가기로 했던 생각을 바꿔
인도의 중부를 돌 생각이다.
푸쉬카르에 들러 사막에 낙타를 타고 가 볼 생각이며
사막에서의 하룻밤도 지낼 생각이다.
사막에서는 하늘이 동그랗게 보인단다.
거기에 가득차 있을 별을 보고 싶다.
그리곤 자이푸르에 들러 중세 인도의 모습을 볼것이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엘로라와 아잔타에 들러 그 유명한
석굴과 벽화들을 볼 것이다.
그리곤 카주라호에 들러 카마수트라를 사원에 새겨놓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책도 한권하고 싶다.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라니 말이다.
그 다음으로 바라나시에서 갠지스강을 보게 될것이고
갠지스강에서의 화장모습이나 그들의 목욕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캘커타 인도의 최대의 도시이자 또다른 느낌의
캘커타를 보게 될것이다.
마지막으로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확인하고 방콕으로
다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보게 될것이고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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