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와 사랑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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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s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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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와 사랑의 공통점
사춘기, 다시 말해 사랑을 알게 될 나이에 나는 것이 사랑니라고 한다.
상하좌우에 1개씩, 4개가 전부 나는 사람은 60퍼센트 정도인데,
'사랑니는 퇴화되어가는 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는
'진화되지 못한 미개인'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놀렸던 기억도 난다.
사랑니가 전혀 나지 않는 사람은 전체의 7퍼센트 정도라고 하며,
사랑니가 날 때의 아픔은 사랑의 아픔과 흔히 비교되기도 한다.
나는 비교적 진화된 인간에 속하는 편으로,
몇 년 전에 사랑니가 딱 하나 났을 뿐이다(정말로 불과 몇 년 전이다.
그 때가 나의 사춘기였나? -_-).
왼쪽 아래 잇몸이 욱씬욱씬하더니 어느 날 작고 뾰족한 것이
잇몸 위로 살짝 올라왔다. 나는 처음에 그게 뭔지 몰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드라큘라에게 물려 새로운 송곳니가 난 것은 아닌가 하고
고민을 했으니까. 하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그게 바로 사랑니라는 것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참기 어려운 치통이 엄습했지만, 진통제 몇 알을 먹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사랑니는 자리를 완전히 잡았는지
더 이상 내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냥 방치해두기로 했다.
물론 사랑니가 가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때는 있었다.
몹시 피곤한 날이면 어김없이 사랑니 부근이 욱씬거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년 전쯤 충치 때문에 치과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도
'사랑니를 뽑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할 것'이라는 의사의 충고를 흘려들었다.
늘 아픈 것도 아니고, 가끔 내 몸이 피곤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라면,
사랑니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최근 들어 치통이 자주 찾아왔다. 치과에 갔더니
예의 그 사랑니에 충치가 생겨서 뽑아야만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일 당장 뽑아 달라고 했더니, 다음 날은 마침 토요일이라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뽑고 나서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병원에 와야 하는데, 일요일은 진료를 하지 않으니
치료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 하나 뽑는 것 가지고
그런 걱정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별 수 없이
월요일로 예약을 했다. 집에 와서야
화요일 저녁에 빠질 수 없는 술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기억나
치과의사인 선배에게 '사랑니 뽑은 다음 날 술을 마셔도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마셔도 된단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니'라는
매우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농담도 잘 하시지'하면서 '사랑니 뽑는 일'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론을 말하면 다음 주 월요일, 의사 선생님과 내가 죽을 고생을 한 끝에
1시간 10분만에 사랑니가 뽑혀 나왔다. 나는 치과 대기실 의자에
20분 정도 널브러져 있다가(바로 나가면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
얼음풍선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엉엉 울었다.
마취가 풀리자 고통은 더 심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리 아파도 뽑지 말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를 뽑느라
무리하게 벌려 찢어진 입술과 이를 뽑고 나서 꿰맨 자리가 계속 아팠고,
목 안쪽에도 상처가 생겼는지 물을 마시는 것도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통증은 조금씩 약해져갔다. 오후의 아픔이
오전의 아픔보다 덜 했고, 저녁의 아픔이 오후의 아픔보다 덜 했다.
술자리에서 맥주를 한 모금 입에 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시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대신
'사랑니 뽑고 나서 술 마시고 고생한 사람들의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는 사람들은 많았다. 결국 나는 사이다로 만족해야 했다.
수요일은 화요일보다 견디기 쉬웠다. 가끔 내가 사랑니를 뽑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 물론 어제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픔은 남아 있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좀 나을 것이란 걸
이제는 믿을 수 있다. 다음날, 그 다음날은 전날보다 분명히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니로 인한 이 아픔은 완전하게 사라질 것이다.
머지 않아, 나는 한 때 나에게 사랑니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되겠지. 그것이 처음 생겼을 때의 아픔도,
그것을 뿌리째 뽑아내었을 때의 아픔도.
사랑니를 괜히 사랑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사랑니와 사랑, 그들이 뽑혀나갔을 때는 죽을 듯이 아프지만,
그 아픔은 곧 잊혀진다.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
그들은 사라지고 나는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사랑니와의 투쟁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속으로는 약간 자랑스러워하듯이,
언젠가는 사랑의 상처도 아픔 없는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글 / 황경신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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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함박웃음님의 댓글
- 함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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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한 인간인 편인 나는...
함박웃음님의 댓글
- 함박웃음
- 작성일
4개의 사랑니를 모두 가지고 있지요.. 흣~ -_- v
준님의 댓글
- 준
- 작성일
난 가슴에 털도 있는데(셀수있을 만큼의...ㅋㅋㅋ) 사랑니는 아직없다..난 진화됐다
simplian님의 댓글
- simplian
- 작성일
난 사랑니 같은거 없다.
etoile님의 댓글
- etoile
- 작성일
두개 났던거 두개 다 빼버렸지. 사랑니 공포증 있어요. 무지 아픔...
山님의 댓글
- 山
- 작성일
궁금한걸! 사랑니의 통증과 공포가...^^